정원은 없어도 지구는 존재한다.

서울식물원의 어떤 정원에는 좀씀바귀가 무리 지어 자란다. 재작년에 몇 포트를 사다가 심은 것이 잘 번져서 숙근초 사이를 채운다. 줄기를 뻗으며 뿌리를 내리는 좀씀바귀에게 울타리는 무의미하다. 빈자리가 있으면 경계를 넘어 쉽게 번진다. 강건하지만 숲이 짙어지면 다른 식물에 자리를 내어주며 덩굴을 만들지도 않아서 건강한 식물들의 생육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좀씀바귀는 정원에서 종종 잡초로 인식되는 식물 중 하나다. 도시의 녹지에서 흔한 편인데 워낙 잘 번지다 보니 정원사가 의도하지 않은 경관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매년 이곳의 좀씀바귀를 보고 이것도 심은 것인지, 뽑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묻는 사람들이 있다.

좀씀바귀처럼 의도하고 심은 것이 아니더라도 이 정원에는 이런저런 풀들이 함께 자란다. 선씀바귀, 꽃다지, 주름잎, 봄맞이꽃, 길골풀, 매듭풀, 밭뚝외풀, 좀개소시랑개비… 나의 눈에는 이곳에 우리가 심은 식물과 절로 난 식물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 아니 어쩌면, 자연의 입장에서는 실새풀과 산비장이, 관중과 산수국 같은 식물이 침입자, ‘잡초’일지도 모른다. 우연한 이벤트로 들어온 침입자. 종전의 천이 과정에 없는.

시대에 따라 정원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정해진 구획 속에 누군가의 이상적 경관, 바라는 모습, 말하고자 하는 바가 구현된다는 점은 일반적인 정원의 특징이었다. 그렇다 보니 원하지 않는 대상을 배제하는 것 역시 정원의 논리다. 원하지 않는 풀, 원하지 않는 장식, 원하지 않는 동물은 배제된다. 그래서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의 책 ‘모두스 비벤디’를 통해 근대의 인간상을 두고 정원사에 비유하기도 했다.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적 모습을 위해 관리하고 다듬는 인간. 무결하고 완전한 사회를 위해 원하지 않는 것은 배제하는 인간. 근대의 인간은 그렇게 유토피아를 향해 걸어가지만, 그릇된 욕망은 나치의 인종청소나 이념, 종교 갈등에 따른 내전을 낳기도 한다.

질 클레망의 책 ‘정원으로 가는 길’에는 호주 탑엔드의 부족과 그곳에 없는 정원에 관해 이야기하는 글이 있다. 100년 전에 정착한 호주 탑엔드의 주민들은 백인과 함께 살기 이전까지 땅을 개간하지 않았으며 백인이 사는 집과 비슷한 집에서 살아가는 지금도 정원을 만들지 않는다. 그 이유를 진지하게 탐구하던 질 클레망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호주 원주민의 시에서 찾았다.

인간은 꿈꾸었네. 새벽에 일어난 새들의 노래소리와 타조의 춤과 지는 해의 붉은 황토색을 함께 나누기를. 그는 또 꿈꾸었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그리고 인간은 꿈을 이해했네. 그러자 그는 계속 꿈꾸었네, 그 전에 꿈꾸었던 모든 것들을.

그는 꿈꾸었네, 잔잔하고 깊은 물을 파도와 축축한 모래를 바위와 뜨거운 태양을 바람과 열린 하늘을 나무와 밤하늘을 금빛 풀로 뒤덮인 평원을.

그리하여 그때 인간은 꿈을 통해 알게 되었네, 모든 창조물들이 친한 정령들이라는 것을 …… 그리고 자기가 그들의 꿈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꿈꾸었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기 아이에게 이 비밀을 말해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때 결국 대정령은 알게 되었네, 꿈의 비밀이 온전하다는 것을. 그리고 천지창조의 꿈을 꾸어 피곤해진 생명의 정령은 땅 속으로 들어갔네, 휴식을 취하기 위해.

그리하여 이제는 모든 창조물의 정령들이 피곤해지면 땅 속에서 생명의 정령을 만난다네. 그래서 땅은 성스럽고 인간은 그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네.

호주 원주민들의 동화 中

지구가 귀하고 모든 생물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자연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정령의 세계다. 이 땅의 ‘모든 창조물의 정령’이 쉬기 위해 들어가는 땅을 어떤 마음으로 열고 개간해 상처입힐 수 있는지, 질 클레망은 호주 원주민의 시선을 빌려 질문한다. 이들의 세상에 정원은 없어도 지구는 존재한다.

도림천역과 신도림역 사이, 도림천 제방에는 5월이면 지칭개가 무리 지어 핀다. 그 사이로 호밀풀, 갈풀 등이 섞여서 자란다. 교란이 심하고 범람의 위험이 있는 위태로운 서식처지만 오후의 햇살이 삼라만상을 비추는 시간에는 여느 정원 못지않게 아름답다. 영동대교 북단 2014번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작은 녹지에는 5월이면 참새귀리가 군락을 이루어 피는데 강바람이 불어오면 무리 지은 이삭이 융단처럼 펄럭거린다. 장마가 지나면 참새귀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를 강아지풀이 가득 채운다.